기계식 키보드에 입문하여 처음 스위치를 타건할 때, 많은 분이 ‘서걱임’이라는 장벽에 부딪힙니다. 분명히 리니어 스위치라고 해서 샀는데, 키를 누를 때마다 플라스틱이 긁히는 듯한 미세한 마찰음과 진동은 타건의 즐거움을 크게 반감시킵니다.
이 스위치 서걱임을 잡기 위해 많은 분이 윤활 작업에 도전하지만, 이는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고된 작업입니다. 하지만 최근 커스텀 키보드 시장에서는 윤활 없이도 이 서걱임을 원천적으로 해결한 스위치 재질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POM 스템과 UPE 스템 비교를 통해 스위치 서걱임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 재질 차이 하나만 알아도 어떻게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는지 그 모든 비결을 지금 바로 파헤쳐 보겠습니다.
스위치 서걱임, 도대체 왜 발생하는 걸까요?
스위치 서걱임은 청축의 ‘찰칵’ 소리나 갈축의 ‘걸림’과는 완전히 다른, 불필요한 ‘마찰 소음’을 의미합니다. 리니어 스위치(적축, 흑축 등)는 걸림 없이 매끄럽게 눌려야 정상이지만, 내부 부품들의 마찰로 인해 서걱이는 느낌이 발생합니다.
이 서걱임이 발생하는 부위는 크게 두 곳입니다.
- 스템과 하우징의 마찰: 스위치의 핵심 부품인 스템(십자 기둥)이 상하로 움직일 때, 스템의 측면 레일(기둥)이 하우징(스위치 바닥)의 레일과 마찰하며 소음이 발생합니다. 이것이 서걱임의 주된 원인입니다.
- 스템과 금속 접점의 마찰: 스템의 다리(Legs) 부분이 키 입력을 인식하는 내부의 구리색 금속 접점(리프)을 밀어내면서 긁히는 소리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전통적으로 기계식 스위치의 대명사인 체리 스위치를 포함한 많은 스위치는 이 스템과 하우징 재질로 POM(폴리옥시메틸렌)을 사용해왔습니다. POM은 내마모성이 강하고 단단하여 스위치 재질로 훌륭하지만, POM과 POM이 서로 마찰할 때의 마찰 계수는 생각보다 높아 특유의 ‘서걱임’을 유발합니다. 우리가 흔히 ‘체리 순정 서걱임’이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이 재질적 한계입니다.
스위치 스템 재질 전격 비교 (POM vs P3 vs UPE)
스위치 서걱임을 잡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윤활제를 발라 마찰을 줄이는 것이고, 둘째는 마찰 계수가 극도로 낮은 ‘신소재’로 스템을 만드는 것입니다. 최근 커스텀 키보드 시장은 이 신소재 스템의 전쟁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 POM 스템 (폴리옥시메틸렌)
- 별칭: 표준 스템
- 특징: 수십 년간 사용된 기계식 스위치의 표준 재질입니다. 체리, 게이트론, 카일 등 대부분의 기성 스위치 스템에 사용됩니다.
- 장점: 내구성과 내마모성이 검증되었으며, 단단한 재질 특성상 타건 시 ‘클래키(Clacky)’ 즉, 비교적 명확하고 경쾌한 소리를 내줍니다.
- 단점: 마찰 계수가 높아 윤활 작업(예: 크라이톡스 205g0)을 하지 않으면 서걱임이 매우 심하게 느껴집니다.
2. P3 또는 P+ 스템 (특수 POM 혼합물)
- 별칭: 개량형 스템
- 특징: POM을 기반으로 하지만, 제조사(주로 JWK/Durock)에서 마찰 계수를 낮추기 위해 다른 재료를 혼합한 독자적인 스템 재질입니다.
- 장점: 순정 POM 스템에 비해 훨씬 부드럽습니다. 윤활 없이 사용해도 서걱임이 상당히 적고, 타건음도 POM의 경쾌함을 유지합니다.
- 단점: POM보다는 낫지만, UPE 계열보다는 마찰 계수가 높습니다.
3. UPE 스템 (초고분자량 폴리에틸렌)
- 별칭: 우프 스템, UHMWPE
- 특징: 현재 출시된 스템 재질 중 마찰 계수가 가장 낮은 신소재 중 하나입니다. 스스로 윤활하는 성질(Self-lubricating)을 가지고 있습니다.
- 장점: 마찰 계수가 극도로 낮아, 윤활을 전혀 하지 않아도 스위치가 ‘버터처럼’ 매끄럽게 눌립니다. 스위치 서걱임이라는 단어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듭니다.
- 단점: 재질이 POM보다 무르기 때문에 타건음이 경쾌하기보다는 ‘로우 피치(Low-pitched)’ 즉, 낮고 묵직하며 다소 먹먹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4. LY 스템
- 별칭: LY 스템
- 특징: UPE와 마찬가지로 극도로 낮은 마찰 계수를 목표로 개발된 또 다른 신소재입니다.
- 장점: UPE와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부드러움을 제공합니다. 서걱임이 전혀 없는 완벽한 리니어감을 구현합니다.
- 단점: UPE와 마찬가지로 타건음이 다소 댐핑되고 낮게 들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 역시 POM 스템 스위치만 5년 넘게 직접 윤활하며 사용하다가, 처음 UPE 스템이 적용된 스위치를 접했을 때 윤활 없이도 이렇게 부드러울 수 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스위치 재질 비교 요약표
| 재질 구분 | 별칭 | 마찰 계수 (상대적) | 타건감 특징 | 타건음 특징 |
| POM | 표준 스템 | 높음 | 서걱임 (Scratchy) | 경쾌함 (Clacky) |
| P3 / P+ | 개량형 스템 | 중간 | 부드러움 | 밸런스 잡힘 |
| UPE | 우프 스템 | 매우 낮음 | 버터 같음 (Buttery) | 낮고 묵직함 (Thocky) |
| LY | LY 스템 | 매우 낮음 | 극도로 부드러움 | 낮고 댐핑됨 |
스위치 서걱임 완벽하게 잡는 2가지 접근법
스위치 서걱임을 잡는 방법은 결국 ‘윤활’이냐 ‘재질’이냐의 선택입니다.
방법 1. 전통적인 방식: POM 스템 + 수동 윤활
이 방법은 체리 흑축이나 적축 같은 전통적인 POM 스위치의 서걱임을 잡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 장점: 내가 원하는 윤활제를 사용하여 원하는 만큼의 부드러움과 소리를 직접 튜닝할 수 있습니다. POM 특유의 경쾌한 타건음(Clack)을 살리면서 부드러움을 더할 수 있습니다.
- 단점:
- 시간 소모: 100개의 스위치를 분해, 윤활, 재조립하는 데 3~5시간이 걸립니다.
- 균일도 문제: 손으로 작업하므로 어떤 스위치는 윤활이 과하고 어떤 스위치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 실패 위험: 윤활제를 너무 많이 바르면(과윤활) 스위치가 끈적하고 먹먹해져 아예 못쓰게 될 수 있습니다.
- 필수 도구: 스위치 오프너, 세필붓, 크라이톡스 205g0 같은 전문 윤활제
방법 2. 현대적인 방식: 신소재 스위치 선택 (UPE, P3 등)
이 방법은 애초에 마찰이 적은 스위치를 구매하여 윤활의 필요성 자체를 없애는 것입니다.
- 장점:
- 즉각적인 만족감: 구매해서 키보드에 꽂는 즉시 윤활한 것과 같은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 완벽한 균일도: 모든 스위치가 공장에서 동일한 재질로 생산되어 키감의 편차가 없습니다.
- 시간 절약: 지루한 윤활 작업에서 해방됩니다.
- 단점:
- 스프링 소음: 스템은 부드럽지만, 스프링 윤활은 따로 되어있지 않아 ‘팅팅’ 울리는 스프링 소음은 잡지 못할 수 있습니다.
- 타건음: UPE나 LY 재질 특유의 낮고 묵직한 타건음이 내 취향이 아닐 수 있습니다.
윤활 없이 UPE 스템만 사용해도 괜찮을까요?
UPE 스템 스위치를 구매했다면 스템과 하우징의 마찰, 즉 ‘서걱임’은 99% 잡혔다고 봐도 됩니다. 하지만 이것이 ‘완벽한 스위치’라는 뜻은 아닙니다.
서걱임은 잡혔지만, 다른 두 가지 소음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 스프링 소음 (Spring Ping): 스위치를 누를 때 스프링이 압축되고 복원되면서 ‘팅팅~’ 하고 울리는 금속성 소음입니다. UPE 스템은 이 소리를 잡아주지 못합니다.
- 하우징 소음 (Housing Noise): 스템이 바닥을 치는 소리(Bottom-out)와 뚜껑을 치는 소리(Top-out)가 여전히 날카롭게 들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UPE 스위치를 구매한 고수들은 다음과 같은 ‘최소한의 튜닝’을 추가로 진행합니다.
- 스프링 윤활: 스위치를 분해하여 스프링만 크라이톡스 105 같은 저점도 오일로 ‘봉지 윤활’하여 스프링 소음을 잡습니다.
- 스위치 필름: 상부 하우징과 하부 하우징 사이의 유격을 ‘필름’으로 메워, 하우징이 떨리는 소리를 잡고 타건음을 더 단단하게 만듭니다.
결론적으로, UPE 스템은 ‘스템 서걱임’을 잡는 완벽한 해결책이지만, 스프링 소음과 하우징 소음은 여전히 튜닝의 영역으로 남아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질문1. 윤활된 POM 스위치와 윤활 안 한 UPE 스위치 중 뭐가 더 부드럽나요?
답변. 이는 개인차가 있지만, 마찰 계수만 놓고 보면 윤활을 하지 않은 UPE 스위치가 더 부드럽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얇고 정밀하게 ‘윤활된 UPE 스위치’가 현존하는 가장 부드러운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질문2. UPE 스위치는 키감이 먹먹하다는데 사실인가요?
답변. ‘먹먹하다(Mushy)’는 표현은 윤활제를 너무 많이 발라 끈적거리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UPE 스위치는 끈적이기보다는, 재질 자체가 POM보다 무르고 마찰 소음이 사라지면서 타건음이 더 ‘낮고 굵게’ 들리는 ‘로우 피치(Low-pitched)’ 성향을 보입니다. 이를 먹먹하다고 느낄 수도, 묵직하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질문3. P3, LY, POK 등 신소재가 너무 복잡합니다. 초보자는 뭘 사야 하나요?
답변. 이 모든 신소재의 목적은 ‘서걱임 감소’로 동일합니다. 따라서 특정 약어에 집착할 필요는 없습니다. 초보자라면 최근 출시되는 ‘공장 윤활(Factory Lubed)’이 적용된 리니어 스위치를 구매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게이트론 황축 프로, 오일 킹, Akko V3 크림 옐로우 등은 별도 윤활 없이도 서걱임이 거의 없어 입문용으로 훌륭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결론
스위치 서걱임은 더 이상 기계식 키보드의 숙명이 아닙니다. 과거에는 이 서걱임을 잡기 위해 크라이톡스 205g0를 바르는 고된 ‘윤활’ 작업이 유일한 해결책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POM의 한계를 극복한 UPE, LY, P3 같은 신소재 스템이 등장하면서, 스위치를 구매하는 ‘선택’만으로도 서걱임에서 해방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 취향이 경쾌한 소리의 POM 스위치를 윤활하여 완성하는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서걱임이 없는 UPE 스위치의 묵직함을 즐기는 것인지 판단하여 현명한 선택을 하시길 바랍니다.